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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점 48.5h
POSTED: 2/10/2026
"오리건의 몽그렐스"
어떤 게임은 좀비라는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실패의 절반을 떠안는다. 너무 많이 소비되었고, 손쉬운 감정 호출은 인간을 자주 단순화해 왔다. 〈데이즈 곤〉 역시 그 위험한 문턱에서 출발한다. 오리건의 황량한 도로와 집단화된 감염자들, 상실 이후의 세계라는 익숙한 풍경은 이 게임이 또 하나의 생존 서사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플레이를 이어갈수록 이 예상은 서서히 어긋난다. 5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게임은 나를 밀어붙이거나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다. 억지로 진행하고 있다는 감각 대신 세계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 오랜만에 경험하는 감정이다. 데이즈 곤은 재앙 그 자체보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이야기는 사건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쌓이고, 그 축적이 플레이어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음악은 이런 체험을 완성한다. 디컨이 '결정적인 이동'을 선택하는 순간마다 흐르는 음악들은 플레이 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리건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듣는 컨트리 음악은 이 세계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온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픈 월드를 달리며 듣는 컨트리 음악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디컨 세인트 존은 계속해서 같은 장소를 맴돌고, 같은 기억을 되씹는다. 이미 끝났을지도 모를 희망을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이 반복은 플레이 구조에서도 고스란히 체화된다. 오픈 월드임에도 랜덤 인카운터의 다양성이 부족한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게임이 좀비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 프리커라 불리는 감염자들은 단순한 타격 대상이 아니라, 압도적인 집합체로서 플레이어를 시험한다. 이때 공포는 개별 적의 위협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십, 수백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발생하는 것은 단순한 공포라기보다는 감당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공포. 코스믹 호러와 비슷한 그것이다.
자원을 수집하며 생존하는 플레이 방식 역시 이 세계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오토바이의 연료를 계산하며 이동하고, 연비 주행을 하고, 체력이 바닥나면 주변 건물을 뒤져 재료를 모은다. 호드에 맞서기 전 충분한 준비를 하는 과정들은 하나의 서사처럼 경험에 녹아든다. 메인과 보조 미션의 시간을 절제해 지도을 과도한 마커로 채우지 않은 점도 인상적이다. 그 틈에서 플레이어는 오리건의 자연을 바라보며 숨을 고를 시간을 얻는다.
〈데이즈 곤〉은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존엄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귀한 선택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집요하고 미련한 집착일 뿐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 하나가 인간을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 게임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상실 이후의 시간을 길게 늘여놓은 체험에 가깝다. 빠른 서사와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분명 불친절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불친절한 작품들이다. 〈데이즈 곤〉은 끝난 세계를 배경으로 끝나지 않는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게임이다.
감히 오토바이를 탄 <레드 데드 리뎀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천천히, 집요하게 우리를 오리건으로 초대한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